같은 영화, 다른 시선
매주 월요일마다 보트, 영민, 브로콜리너뿐야 이렇게 세명이 같은 영화를 보고 글을 씁니다.
각자의 시선으로 시작한 글은 서로의 글에 대해서까지 이어집니다.
이닥의 출중한 필자 셋이 같은 영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각자의 시선에 대해서 역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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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닥의 출중한 필자 셋이 같은 영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각자의 시선에 대해서 역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셋이지만,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나눌 수 있습니다!!_-
-필자에 대한 소개는 이닥의 구성원을 소개합니다.를 참고해주세요.
같은 영화, 다른 시선 | 첫번째 영화 하녀 | 세번 째 주자 브로콜리 너뿐야
"쥐"
요즘에야 그럴 일이 잘 없지만 나 어릴 때만 하더라도 길가에 죽은 쥐를 보는 일은 예사였다. 학교를 가다가 어느 봉고차에 치인 쥐가 날아와 내 앞에 툭 떨어지는가 하면, 놀이터로 뛰어가다가 실수로 달리는 쥐를 밟기도 했다.
이 영화를 보고 최근 지인이 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홍대에 쥐들이 그렇게 많단다. 먹을 게 많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멀끔해서 쥐가 많다는 것을 못 느끼지만 해가 지고 음식점의 쓰레기봉투가 밖으로 내오기 시작하면 어디서 오는지도 모를 쥐들이 홍대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닌다고 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대낮 길 가에 죽은 쥐가 드러나기도 하는데, 한 번 본 그 이미지는 "뇌리에 너무 강하게 박혀" 며칠 내내 아, 보지 않았음 좋았을 것을, 할 뿐이다. 그리로 이끈 내 몸뚱이를 탓 할 뿐이다.
영화 <하녀>를 보면 쥐의 이미지를 빼놓을 수 없다. 모든 이야기가 쥐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큰 집으로 이사 온 날 부인은 부엌에서 쥐를 본다. 쥐에 놀란 부인은 '집이 너무 컸나 보다'며 '하녀 없인 안 되겠다'고 한다. 하지만 하녀가 들어온 첫 날, 부인은 꿈을 하나 꾼다. 쥐가 죽었는데 그 죽은 쥐의 얼굴은 '사람' 인 괴상한 꿈이다. 하녀가 이 집에 들어온 날 처음 하는 일도 '쥐'를 잡는 것이었다. 부인은 놀라 나자빠진 쥐를 하녀는 혀를 낼롬거리며 가지고 논다. 그리고 때려 죽인다. 무식한 하녀의 행동을 보고 김선생은 말한다. "쥐는 약으로 잡아." 그리고 쥐를 죽이는 '쥐약'이 결국은 사람을 죽이기에 이른다.
보편적인 쥐의 느낌은 징그럽고 물컹거리고 불편하다. 진회색 몸뚱이에 뾰족한 얼굴에다 가늘고 긴 꼬리로 '바닥'을 기어다니는 쥐들 (이 문장을 쓰기 위해 애써 쥐를 머릿속에 떠올려야 하다니. 흑)
영화는 사람들이 애써 부인하고 그냥 묻어가고 싶은 것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것도 '가족'을 통해서. 느닷없이 쥐를 보는 것처럼, 불편한 진실 같은 것을. 그게 영화에선 일부일처제라는 법을 거스르는 간통을 이용해 드러낸다. 지금에야 이런 주제가 식상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개봉한 60년대에 보았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관객이 많이 모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불편하고 싫으면서도 자꾸 보게 만드는 것, 이걸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잔인한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묘한 쾌락 같은 것 말이다. 이 영화 역시 그런 매력이 있다.
60년대 당시, 한국전쟁이 끝나고 점점 경제가 좋아지면서 가족 단위로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있었다. 이게 행복이구나 그랬다. 하지만 그 행복과 함께 미끄덩거리는 어떤 이물질도 자연스레 따라왔다.
이 영화의 큰 줄기 역시 그렇게 구성됐다. 한 편에서는 집 안에 텔레비젼이 들어오고 부인은 사내 아이를 낳는다. 그 와중에 또 한 축에서는 김 선생이 쫓은 여공 곽선생이 죽고 하녀와 간통을 하고 임신을 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두 줄기가 맞물리며 간다. 그 두 축이 직선으로 내달리지 않고 굴절하여 둘이 만났을 땐? 화해는 없다. 그대로 파멸이다.
인상적인 건 쥐와 함께 따라오는 다람쥐의 이미지다. 김 선생은 다리가 마비인 딸을 위해 다람쥐를 사 온다. 쥐냐고 들이대는 하녀에게 '이건 다람쥐야, 기를 거란 말이야,' 라며 핀잔을 주곤 딸에게 다가간다. 다람쥐는 넓은 산천을 뛰어다니는 짐승인데 사람이 잡아서 이렇게 못 뛰게 만들었다고, 그래서 다람쥐는 틈만 나면 이렇게 뛰는 연습을 한다며 딸을 격려한다. 너도 나을 수 있다고. 결국 이 다람쥐는 죽는다.
다리를 저는 딸과 다람쥐의 결합이 주는 이상한 느낌은 자다가도 깨서 기계처럼 재봉틀을 돌리는 부인의 이미지에도 이어진다. 휘청거리는 집안에 안정을 되찾기 위해 부인은 다시 재봉틀을 돌린다. 또 '너만 걷게 되면 우리 집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진다' 는 부모님 말에 힘입어 딸은 쳇바퀴 돌리는 다람쥐를 보며 희망을 갖는다. 이 때 딸의 다리는 병신이나 절름발이 같은 것으로 불리게 된다. 넓은 평원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매일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이것 역시 김 선생이 일방적으로 부여한 해석이긴 하다) 희망을 가장한 핑계 같은 것, 살아가기 위해서. 그게 또 진리이기도 하다.
김 선생이 쥐는 거부하고 다람쥐를 사들여서 기르려고 하지만 둘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어쨌든 쥐약을 먹으면 다 죽고 마는 그런 운명을 가진 것들.
"여자들"
쥐와 함께 강한 소재는 여자들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든 생각은 이런 거다. "이 여자들은 왜 이렇게 이 남자를 괴롭힐까."
자본주의 일부일처제에서의 남자들의 욕망을 부각시킬 것 같지만 두드러지는 건 여자들의 욕망이다. 남자의 욕망이 나올지라도 더 흥미있는 건 여자들의 욕망이다. 그건 계급화되어 있다. 하녀-여공-부인으로 나뉘어져 각자의 욕망으로 남자를 괴롭힌다. 물론 가장 천대받는 건 하녀다. 인물들이 하녀를 대하는 태도에는 괄시와 연민이 동시에 드러난다.
여기서 짓눌리고 마는 남자는 당연히 무력해 보인다. 더구나 이 여자들이 원하는 건 김 선생이 아니다. 하녀가 욕망한 건 김 선생이라기보다 "미스 조에게는 지기 싫다는 것, 왜 누구 애는 낳게 하고 내 애는 떼게 하느냐"며 불공평에 대한 억울함. 여공인 미스 조도 그저 음악 선생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것 같고 그래서 여공들끼리 뒤에선 김 선생을 우스개처럼 조롱하는 장면들이 인상깊다. 그리고 부인은 가족을 지키겠다는 집착, 고생해서 얻은 집에서 한 방도 내어줄 수 없다는 욕심. 오히려 원하는 건 남편이고 아버지이다.
김 선생은 부인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가족을 지키려고는 하나 밀리는 힘들에 전혀 손 쓰지 못 하는 무력한 모습. 남자의 욕망이 도드라지는 부분은 지극히, 그저 반응으로서의 욕망일 뿐이다.
(하나 재밌는 점은, 이 당시 한국 사회라면 지배적인 가부장적인 면모를 김 선생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직접 부엌으로 가서 음식을 하고 아내의 어깨를 주물러 주는 남편이다. 나가서 허튼 짓 하고 다니는 뺀질한 남편도 아니다. 그래서 단란한 가정의 이미지가 더 부각되고 파멸 역시 더 극대화되는 것 같다.)
남편의 아내를 임신한 하녀를 설득해서 애를 떼게 하려는 부인.
무엇보다 나를 끈 여자는 '딸'이다. 어린애가 다리를 절며 등장하는 장면부터 중요한 때마다 이상한 표정으로 한 번씩 클로즈업되면 그게 바로 공포였다. 내가 가장 무서웠던 모습은, 부인이 음식에 쥐약을 타서는 부엌문을 나설 때 만난 '딸의 얼굴'이었다. 하녀의 횡포로 가정이 거의 파멸에 이르자 참다 못 한 부인은 하녀의 밥에 쥐약을 탄다. 그 밥을 들고 부엌문을 나서는 순간 카메라는 빠르게 패닝을 하면서 딸의 얼굴로 옮겨 간다. 약간 빼뚤하게 고개가 젖혀진 상태에서 멀뚱하게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모습. 그 잛은 순간의 괴기스러운 느낌에 대해서 뭐라고 표현하기가 아직은 내게 어렵다.
그건 살인하겠다고 마음먹은 엄마가 느낀 죄책감에서 본 딸의 얼굴일 수 있다. 아니면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말 못 하고 안타까워만 하는 딸의 모습을 연출할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 사실 이 영화에서 딸은 어린애답지 않게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인물이다. 쥐약을 처음 본 순간부터 어두워지는 얼굴이나, 하녀가 주는 물을 보고 쥐약을 탔을지도 모른다고 예언하는 아이였다. (어쨌든 김기영이 만들어내는 이런 괴기스런 장면들!)
밥에 쥐약을 타서 나오는 엄마를 화들짝 놀라게 만들던 이 얼굴. 이 순간 영화에 들어간 가슴 철렁하는 효과음과 빠른 패닝의 의미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세상 일은 다 그렇게 되는 거야."
영화 초반, 공장 기숙사에서 미스 조가 하녀에게 이런 말을 한다. 하녀가 담배를 피고 있자 "그런 걸 본받다간 제트기처럼 추락하게 되고 만다"고. "세상 일은 다 그렇게 되는 거라고."
이 말은 도덕적으로 타락하면 파멸하고 만다는 도덕적 경종을 울리는 말이 아니라, 이미 세상을 알아버린 듯한, 화해보다 파멸을 그린 감독의 저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일은 다 그렇게 되는 거야."
우리는 모두 깨끗한 척 할 뿐이지, 쥐약을 훨씬 더 많이 뿌려대면서 쥐를 죽이고 감출 뿐이지, 세상에 늘어나는 음식의 양만큼 쥐는 더욱 득실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 선생이 말하지 않는가. 셋방에 있었으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났다며, 집이 커졌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 고 한다. 구차한 변명 같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앞서 두 필자의 글에서도 계속 '공간'이 중요시 됐듯이, 집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방 문'이란 게 생기고 (영화에서 방문을 열고 닫는 이미지가 많이 나온다. 그게 하나의 '막'기능을 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나뉘고 서로에게 비밀이 생긴다. 그래서 난 김 선생이 부인에게 고백'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게 의문이 남는다. 부부에게 비밀이 있는 건 당연하다는 선배에개 당신은 썩었다고 하는 김 선생, 양심의 가책을 못 이겨 결국 부인에게 사실을 고백하고마는 김 선생의 도덕적 강박이 이 사건을 파멸에까지 이르게 한 원인이기도 하다. 간통이 옳고 나쁘고라는 문제는 일단 떠나서 말이다.
이 영화의 단서 하나 하나는 앞에서 보았던 이미지나 대사들을 자꾸 물어온다. 물론 미래를 예언하는 꿈이나 상징들이 도식같다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렇게 보면 또 이렇게 저렇게 보면 또 저렇게 보이는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영화이기도 하다.
posted by
브로콜리 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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